전시회 작품소개

광양 선소와 광양현감 어영담

  • 관리자 (appkorea108)
  • 2018-01-31 2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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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선소와 광양현감 어영담

-판옥선 건조 등으로 호국항쟁유적 기려야-

이병근(광양진월 임진왜란 호국선양회 회장)

1.프롤로그

지난 2010년 진월의 촌로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최정호(전 진월면장), 강경진(교장 퇴직), 최한수(전 공무원),김문호(작고. 전 진월면장),안영춘(교사 퇴직) 그리고 필자였다. 화두는 ‘광양진월 임진왜란호국선양회’를 만들어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해 보존.발굴 운동에 나서자는 것이었다.

광양진월 임진왜란 호국선양회는 매주 수요일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다. 정기 수요모임은 수군을 상징키 위해 수요일로 정했다. 구성원들은 나이 90이 다 되어 가는 선배님도 있고 필자 또한 80을 바라보는 나이를 뒤로 하고 그렇게 시작해 오늘의 심포지움에 참가하게 된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 그동안 사료조사 위원으로서 일행들과 함께 광양현감 어영담의 ‘묘소’ 등 흔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다닌 시간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함종어씨 종친도 아닌 우리들이 내일처럼 임하게 된 것은 분명 사명감이었다.

후손들에게 딱딱한 철의 도시라는 이미지 보다는, 역사의 유적지를 찾아 복원 발굴해 관광자원화 함으로써 문화의 풍요로움을 조금이나마 충족시키는 것, 또한 단초를 제공, 사료가치가 더욱 높아지리라는 것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광양현감 어영담. 그는 임진왜란의 또 다른 영웅이다. 광양 선소가 그 중심에 서 있다.

2.광양 선소진

광양 선소에 대한 기록은 배를 만들었다는 ‘임진장초(壬辰壯草)’에 기인한다. 순천대학교 박물관은 지난 99년 지방문화업서 제23의 일환으로 ‘광양시의 호국항쟁유적’이란 단행본에서 이같이 밝히고 있다.

“삼가 진으로 돌아가는 일을 아룁니다. 본도에서 더 만들고 있는 전선을 직접 보살피고 조처해야 겠다는 일로 장계한 뒤에 지난 12월 12일 본도로 돌아와서 검칙하였으되, 본영에 소속된 수군은 다섯 고을로써 순천은 원래의 책임 수량과 더 만드는 수량을 아울러 전선 10척, 흥양이 10척, 보성이 8척, 광양이 4척, 낙안의 3척 등은 벌써 다 만들었으나, 허다한 사부와 격군들을 일시에 보충할 수 없어서 이들을 일제히 돌아오게 할 수 없으므로 순천 5척, 광양 2척, 흥양 5척, 보성 4척, 낙안 2척 만을 먼저 검색하고 독려하여 거느리고 이달 1월 17일 거제땅 한산도 진중으로 향하여 출발하오며, ‘정비되지 못한 전선들은 뒤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오라’고 전령하였거니와 우도는 전선의 수효가 좌도보다 배나 되므로 반드시 허다한 사부와 격군을 제 기한에 보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 종사관 정경달을 시켜 ‘순검하여 조치하라’고 우수사 이억기와 약속한 곳으로 독촉해 보내면서 선칙하였습니다.

그러하오니 겸순찰사 이정암에게 아울러 각별히 독려하여 돌려 보내게 하도록 해당 관부를 시켜 분부해 주시도록 삼가 갖추어 장달하였습니다.

만력 22년 1월 10일

위 내용은 1594년 1월에 기록된 것으로 순천,흥양,보성,광양,낙안에서 만들고 있는 전선을 1593년 12월 12일에 직접 검사해 그 중의 일부 전선을 1594년 1월 17일 한산도로 끌고 간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당시 광양에서는 총 4척의 전선이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전선들이 광양 선소에서 만들어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김정호가 편찬한 지리서 대동지지(大東地志) 광양 창고(倉庫) 중 선소창동오십리(船所倉東五十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양 선소마을의 유래는 배를 만들던 관청인 선소가 자리해 ‘선소’라고 명명돼 왔다.

3.선소마을 보존사업

필자가 속해 있는 광양진월호국선양회는 지난해 8월 5일 광양시장 앞으로 ‘임진왜란 유적 보존사업 건의서’를 여러 차례 타진했다. 광양시의회에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선양회는 그동안 어영담의 흔적이 있는 곳을 답사하고 관련 자료를 모아 광양시와 광양시의회에 정식 공문으로 주위를 상기 시켰던 것이다.

광양시의회는 지난해 9월 6일 회신에서 ▲임진왜란 유적보존사업 건의를 검토해 광양시에 호국항쟁 사적조사 연구용역 과제로 포함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처리해 줄 것을 요청 ▲시의회도 본 민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관리 하겠다.

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당시 우리는 ▷광양현감 어영담의 전공비(戰功碑) 또는 동상건립 ▷광양수군 선소지 수군주둔지 복원 ▷전선인 판옥선 건조 ▷가칭 숭충사(崇忠祠)건립 사업을 건의했다.

첨부서류는 ▷광양현 선소지 고지도 1부 ▷광양현감 어영담 공적사료 1부 ▷광양수군 참전도(해군사관학교박물관 소장)1부 ▷광양현감 어영담 족보 복사본 1부 등이다.

4.선소진,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

광양에는 보여줄 만한 역사문화 유적이 없어 관광상품화하기 어렵다고 얘기들을 한다. 잘 모르고 하는 말들이다. 문화의 세기에 마인드 부족이다. 오늘은 주제에 맞춰 선소 일대에만 국한한다. 임진왜란 때의 전선 4척을 만든 곳이 전라좌수영 5관5포 중 하나인 바로 광양 선소다. 선소에 있는 ‘무적섬’은 일제강점기 정순제.임태일 열사의 항일운동 성지며, 조선후기 시연대회가 열리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옛 진월면사무소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을 하는 데, 하자가 없다. 이미 문화재 전문 위원들이 검증을 거쳤는데도 지자체가의 의지 부족이 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옆 마을 망덕포구는 우리나라 유일의 해태조합과 관사가 자리하고 있는데도 이 또한 방치되고 있다. 이 모두가 근현대 문화유산들로 소중한 관광자원이 즐비한데도 말이다.

사정이 이러니 문화유적에 대한 시민들의 일반적 인지도와 친밀도는 낮은 편일 수밖에.

바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는 문화유적이 더 이상 잠을 재우지 말고, 잘 활용해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 발굴, 홍보할 필요가 있다.

5.중부장 어영담 장군

아무리 훌륭한 문화유적이라도 후손들이 불러주고 찾아 나설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역사로 깨어나는 것이다. ‘광양현감 어영담 심포지움과 사료집 발간사업’ 또한 광양시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정책을 펴 나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양은 하동과 순천, 광양만, 구례군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중요한 군사요충지역 이었음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올해는 임진왜란 420년이 되는 해이다. 광양은 7년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는 동안 폐허화 되었다. 그러나 어영담과 광양지역민과 수군이 있었다. 이들은 전라좌수군의 주력부대로 경상해역에 참전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바로 오늘은 전문가들의 발굴 내용과 향토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광양현감 어영담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으로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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